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컨텐츠

게시판 리스트 페이지

  • 트위터로 보내기
글자크기
판례와 법의 어색한 간극
2019-10-31 09:47:08
아이콘 1871
조회수 32,009
게시판 뷰
산재보험법 이중구조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려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상당인과관계’를 따질 때에는 ‘보통 평균인’이 아닌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 주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법에 명시된 원칙이다. 자살이 업무상 재해인지를 판단할 때에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는 당해 근로자의 제반사항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자살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다.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해서는 안 된다.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울증을 얻어 자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2.3.15. 선고 2011두24644 판결).”

이 판결을 살짝 뜯어보자. 업무와 우울증의 인과관계는 ‘근로자 개인의 제반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를 깔아놨다.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의 인과관계는 ‘보통 평균인’ 기준으로 판단했다. 이 판결이 타당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개의 잣대가 충돌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이 판결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조는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 요건들을 정해놓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업무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한 경우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한 경우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했다는 게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다. 

꼬여 있는 말을 풀어보면 이렇다. ‘업무상의 사유로 인해 정신적 이상 상태가 발생했는지’와 함께 ‘이런 정신적 이상 상태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됐는지’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라는 거다. 산재보험 신청자가 하나를 입증하기도 어려운데, 두가지를 동시에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산재보상보험법의 ‘이중 인과관계 입증 요구’는 대법원 판례가 ‘업무상 사유→우울증→자살’의 인과관계를 ‘근로자 개인의 주관적 상황’과 ‘보통 평균인’이라는 두가지 잣대로 판단한 것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업무상 사유→우울증→자살’의 인과관계를 하나의 잣대로 판단한 판례도 있다는 점이다. 또다른 대법원 판례 하나를 보자. 앞에 예시로 들었던 것보다 앞선 판례다. “망인이 우울증을 앓게 된 게 망인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겹쳐 우울증이 유발 또는 악화됐다면 업무와 우울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대법원 2011.6.9. 선고 2011두3944 판결).” 


그러면서 대법원은 “자살을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제반사항’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판례(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에서도 비슷하게 판단했다. 

이렇게 볼 때 산재보험법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자살을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제반사항’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원칙적으로 옳다면 이중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자살에 관한 산재보험 인정 요건’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은 그 자체가 정상적인 행위선택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던졌다는 사실만큼 정신적 이상 상태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도 없다. 따라서 업무상 재해 인정 요건으로 정신적 이상 상태를 요구하는 건 불필요하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상황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2017년을 기준으로 볼 때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여기에 실적 악화나 구조조정에 따른 상시적 해고 위기감과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안고 살아간다.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신청한 사례가 2005년 단 3건에서 2012년 52건으로 급격히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이상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변호사닷컴 법률뉴스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부딪힐 수 있는 사건·사고에 대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작성한 변호사의 소견입니다.
따라서 법규정 해석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저작권자© 변호사닷컴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 스크랩
목록

법률뉴스 더보기

법률 뉴스 리스트
직장에서 생긴 우울증, 산재로 인정받으려면?
11월 초, 고용노동부는 업무상 정신질병 인정기준에 ‘적응장애’와 ‘우울증’이 추가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최근 서비스 직종에 일하는 근로자에게서 정신질병 사례가 급증...

[노무]

같은 부서 내 커플이라는 이유로 부서 이동, 거부할 수 있나
얼마 전 한 여성이 상담전화를 걸었다. 이 여성은 같은 부서 내에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데, 사귀고 몇 달 안 돼 회사에 소문이 났다. 회사에서는 남자친구와 마주치는 것을 조심하고, 업무와 관련된 일에서만 대화를 했는데, 상사들은 커플이 한 부...

[노무]

분양광고 속 ‘무이자’, 실제로 ‘무이자’ 아니다
한때 많은 휴대폰 매장에서 ‘기기값 무료’인 스마트폰을 판매했다. 그러나 매장에 들어가서 알아보면 당장 내는 돈이 없을 뿐이지 결국 매달 나가는 요금에 합산된다. 젊은 사람들이야 잘 알고 있겠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 입장에서는 이 사실...

[부동산]

다른 사람에게 잘못 배송된 택배, 개봉 후 파손됐다면 책임은?
현대 사회에서 택배를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불편접수도 급증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택배 회사와 운송계약을 한 것이므로, 택배회...

[민사.기타]

전날 마신 술, 안 깼다면 음주운전?
   얼마 전 11톤 화물차가 앞서가던 굴삭기를 들이받으면서, 25인승 미니버스와 승용차 2대를 잇따라 추돌하는 4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굴삭기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것 같다”고 진술했다. ...

[교통사고]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여성 몰래 훔쳐 본 남자, 무죄판결 받은 사연?
  단순한 호기심으로 여자 화장실에 한 발짝 들어간 남성 A씨가 벌금 100만원과 성폭력치료강의 40시간 수강명령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A씨가 “성적 목적을 위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고 범죄 의도를 부인하지만, 여성...

[형사.범죄]

편식하는 아이 훈육하다가 쇠고랑 찬 사연은?
  지난 11월 1일, 김군(5)에게 음식물을 억지로 먹인 조리사 허씨(53)에게 재판부는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하고,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시에 위치한 한 어린이집 조리실에서 허씨는 김군이 음식...

[형사.범죄]

영화 ‘명량’에서 명예훼손 발생, 죽은 사람도 명예훼손?
  (사진 출처: 영화 '명량' 포스터) 얼마 전 배설장군의 후손들이 영화 '명량'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소설 '명량' 출판사 대표를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영화에서 배설 장군을 비겁한 인물로 그리는 바람에 그 후손들이 학...

[형사.범죄]

증여 후 달라진 자식, 재산 되돌려 받으려면?
  지난 달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부양의무를 소홀히 한 자식들에게 증여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게 죄를 지을 경우 반의사불벌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형법 일부 개정 법률...

[상속]

수술 동의서 작성 후, 부작용 생기면?
  성형수술 전에 동의서를 작성한 경우, 수술 부작용에 대해 환자는 의사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없을까. 10월 초, 환자 A씨는 성형외과 의사 B씨에게 눈썹, 지방이식, 코 등 성형수술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A씨의 콧구멍 안쪽 절개부가 벌어져 염증...

[의료]

쇼핑몰에서 스마트폰 충전, 마음대로 하면 ‘절도죄?’
  올 여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공연이 시작되기 전,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위해 한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남자는 연극 소품인 콘센트에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없었고, 결국 스태프들에게 끌려 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배터...

[민사.기타]

남편이 내연녀에게 빌린 돈, 아내가 갚아야 할까
A씨는 남편 B씨의 내연녀인 C씨에게 대여금 청구 소송을 당했다.   A씨와 C씨는 고등학교 친구였으나 C씨는 2010년부터 A씨의 남편과 내연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던 중, 2012년 A씨와 B씨가 이사할 집의 임차보증금이 부족하자, 남편 B씨는 C씨에게 4000...

[이혼.가정]

여아 임신했다고 낙태 요구한 시아버지, 이혼사유일까
민법 840조의 재판상 이혼사유에서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직계존속이라고 하더라도 부부가 혼인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욕설이나 폭행, 학대, 모욕 등 심각하게 부당한 대우를 한다면 이혼사유가 된다고 명시돼 있다. 여아를 임신한 며느...

[이혼.가정]

가족 중 한 명이 몰래 한 ‘연대보증’, 대신 갚아야 할까
연대보증은 채권자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채무자가 대출 만기일까지 빌려간 돈을 갚지 못한다면, 연대보증인이 채무자의 빚을 갚아야 하는 보증채무의 일종이다. 최근 연대보증으로 상담을 의뢰한 20대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의 아버지는 ...

[금전]

동료들의 불륜 소문 낸 직원, 회사가 징계해도 될까
직장 동료의 불륜을 소문 낸 직원이 회사의 징계를 받고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사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4년차 직장인인 A씨는 몇 달 전, 유부남 직원과 미혼 여직원의 불륜을 알아챘다. 자신보다 회사에 늦게 들어온 두 사람에게 따로 경고를 ...

[노무]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지금 활동중인 변호사

더보기

  • 데이터가 없습니다.
  • 대한민국 법원
  • 서울중앙지방법원

HELP 변호사닷컴 사용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Top

변호사닷컴 서비스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