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컨텐츠

게시판 리스트 페이지

  • 트위터로 보내기
글자크기
판례와 법의 어색한 간극
2019-10-31 09:47:08
아이콘 1423
조회수 26,253
게시판 뷰
산재보험법 이중구조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려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상당인과관계’를 따질 때에는 ‘보통 평균인’이 아닌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 주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법에 명시된 원칙이다. 자살이 업무상 재해인지를 판단할 때에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는 당해 근로자의 제반사항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자살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다.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해서는 안 된다.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울증을 얻어 자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2.3.15. 선고 2011두24644 판결).”

이 판결을 살짝 뜯어보자. 업무와 우울증의 인과관계는 ‘근로자 개인의 제반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를 깔아놨다.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의 인과관계는 ‘보통 평균인’ 기준으로 판단했다. 이 판결이 타당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개의 잣대가 충돌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이 판결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조는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 요건들을 정해놓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업무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한 경우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한 경우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했다는 게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다. 

꼬여 있는 말을 풀어보면 이렇다. ‘업무상의 사유로 인해 정신적 이상 상태가 발생했는지’와 함께 ‘이런 정신적 이상 상태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됐는지’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라는 거다. 산재보험 신청자가 하나를 입증하기도 어려운데, 두가지를 동시에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산재보상보험법의 ‘이중 인과관계 입증 요구’는 대법원 판례가 ‘업무상 사유→우울증→자살’의 인과관계를 ‘근로자 개인의 주관적 상황’과 ‘보통 평균인’이라는 두가지 잣대로 판단한 것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업무상 사유→우울증→자살’의 인과관계를 하나의 잣대로 판단한 판례도 있다는 점이다. 또다른 대법원 판례 하나를 보자. 앞에 예시로 들었던 것보다 앞선 판례다. “망인이 우울증을 앓게 된 게 망인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겹쳐 우울증이 유발 또는 악화됐다면 업무와 우울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대법원 2011.6.9. 선고 2011두3944 판결).” 


그러면서 대법원은 “자살을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제반사항’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판례(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에서도 비슷하게 판단했다. 

이렇게 볼 때 산재보험법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자살을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제반사항’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원칙적으로 옳다면 이중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자살에 관한 산재보험 인정 요건’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은 그 자체가 정상적인 행위선택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던졌다는 사실만큼 정신적 이상 상태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도 없다. 따라서 업무상 재해 인정 요건으로 정신적 이상 상태를 요구하는 건 불필요하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상황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2017년을 기준으로 볼 때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여기에 실적 악화나 구조조정에 따른 상시적 해고 위기감과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안고 살아간다.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신청한 사례가 2005년 단 3건에서 2012년 52건으로 급격히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이상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변호사닷컴 법률뉴스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부딪힐 수 있는 사건·사고에 대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작성한 변호사의 소견입니다.
따라서 법규정 해석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저작권자© 변호사닷컴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 스크랩
목록

법률뉴스 더보기

법률 뉴스 리스트
보이스피싱, 고액알바의 유혹을 조심하세요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학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전선에 뛰어드는 대학생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전과자가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은 주로 해외에 본거지를 두...

[형사.범죄]

황혼이혼, 이런 것까지 재산분할이 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결혼 초부터 상습적으로 외도를 일삼으며 고통 속에서 결혼생활을 보낸 60대 여성 A씨는 오래전부터 자녀들이 장성하여 출가한다면 남편과 갈라서 새 인생을 찾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버텨왔다.   시간이 흘러 슬하의 자식들이 반려자를 만...

[이혼.가정]

불법촬영은 했지만 유포하지 않았다면 처벌이 달라질까?
  팬을 상대로 불법촬영을 한 A씨가 경찰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A씨는 올해 초까지도 카메라 장치를 이용해서 다수의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었으며 심지어는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형사.범죄]

음주운전을 하다 물건을 파손시켰다면…어떤 처벌이?
울산의 한 공장의 울타리가 산산조각 났다. 그 이유는 20대 만취 운전자의 차량이 공장의 울타리로 직진했기 때문인데, 경찰에 따르면 이 운전자는 체포 후에도 술에 취해 조사조차 불가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음주운전으로 공장의 울타...

[형사.범죄]

끊임없이 발생하는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작년, 전북 익산에서 발생했던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이 벌어진 후 불과 1년여 만에 또 다시 전북 익산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25일 SNS에 “익산에서 되풀이되는 학교폭력, 아직도 대처는 미흡합니다.” 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해당...

[형사.범죄]

계속해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어떻게 처벌될까
  최근 아동학대와 관련한 뉴스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 계모가 어린 아이를 여행 가방에 7시간 동안 가둬놓아 결국 질식사로 숨진 사건, 아이에게 밥도 주지 않고 심지어 쇠사슬로 묶어놓는 행동을 반복해 결국 아이가 집에서 뛰쳐나온 사건, 아기...

[형사.범죄]

성범죄자들에게 내려지는 보안처분 중 ‘신상정보 공개명령 및 고지명령’...
    신상정보공개명령이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또는 그 외의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일정기간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가 그 정보통신망에 해당...

[형사.범죄]

경찰관 폭행한 40대 남성 징역 8개월 선고되다.
  술 마시고 경찰관을 폭행한 남성(40대)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남성은 2019년 12월 5일 한 술집에서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가 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에게 “왜 왔느냐, 뭐 때문에 왔느냐” 며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

[형사.범죄]

살인 및 존속살해 그 형량은?
 지난달 27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소재의 한 주택에서 70대 여성과 10대 남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8일 동안 아이가 출석을 하지 않았다는 학교 측의 연락을 통해 할머니의 큰며느리가 경찰에 아이의 실종신고를 하면서 이 두 시신이...

[형사.범죄]

강간 부터 음주운전 까지 그 처벌은?
  곧 졸업이 다가오는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강간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은 사실이 알려 졌다.   심지어 이 의대생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차를 들이 받는 사고까지 냈다.   21일 전주지방법원은 전북의 ...

[형사.범죄]

낙태죄 헌법불합치 그 1년뒤는?
 2019년 4월 11일 수많은 여성들의 노력으로 결국 헌법재판소가 형법 269조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었다. (헌법불합치란 규정이 위헌임이 판결이 났지만 사회적 혼란이 날 것을 우려하여 법을 개정하기 전까지 이를 유지하려고 하는 ...

[형사.범죄]

헤어지자는 말에, 성관계 영상을 뿌린다는 협박을 했다고?
  여자 친구 B씨가 A씨에게 헤어지자고 하니 A씨가 그동안 B씨 몰래 촬영해왔던 성관계 영상과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SNS에도 올리고 지인들에게 다 보여준다는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뉴스기사를 접했다. 이 협박 이후에 A씨는 B씨의 반려견을 벽돌...

[형사.범죄]

“아동청소년성범죄” 의 출발점 “온라인그루밍성범죄”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털어놔도 돼.” “내가 너의 안식처가 되어줄게.” “너를 끝까지 책임질게.” 이렇게 달달하고, 의지가 되는 말의 끝은 “오늘 있었던 일 엄마한테 말하지 마” “저번에 그 영상 인터넷에 뿌릴 거...

[형사.범죄]

디지털 성범죄, 그 처벌에 대한 안일함이 낳은 결과물 “텔레그램 N번방”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2020년 3월 18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이다. ‘n번방’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20년 1월 17일에 방영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서 관련된 내용을 방영하면서다.  ...

[형사.범죄]

보이스피싱 현금인출책, 나도 당할 수 있다
피해자에서 순식간에 가해자로, 보이스피싱과 현금인출책   최근 금융 관련 범죄로는 ‘보이스피싱’이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조심하는 상황이고 국가차원에서도 근절을 위해 단속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피해자는 계속 발생하...

[형사.범죄]

4
5
6
7
8
9
10
11
12
13
14

지금 활동중인 변호사

더보기

  • 데이터가 없습니다.
  • 대한민국 법원
  • 서울중앙지방법원

HELP 변호사닷컴 사용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Top

변호사닷컴 서비스 전체보기